일식집에 입양된 '누룽지탕', 우등생 되다
요리의 순혈(純血)을 고집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유감이지만, 여기 '사시미'와 누룽지탕의 밀월(蜜月)이 이뤄지고 있는 일식집이 있다.
서울 연희동의 복강(福岡). 한 집 걸러 중국요릿집 간판을 볼 수 있는 서울 최대의 차이나타운에서 15년 이상 꿋꿋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희동의 터줏대감 일식집이다.
이 독특한 국공(國共)합작, 아니 청일(淸日)합작을 만날 수 있는 메뉴는 복강의 점심 정식. 활어모둠회, 튀김, 초밥, 매운탕, 알밥 등으로 구성된 1인 2만원의 코스 요리다. 그 자체로도 셋 반 이상의 별점(다섯 개 만점)을 줄 수 있는 빼어난 만족도지만, 역시 포인트는 모둠회 다음 순서로 나오는 칼칼한 누룽지탕에 있다. 청요리와 일식의 사이좋은 동거인 셈이다. 연희동·연남동 일대는 2700명가량의 화교가 모여 사는 리틀 차이나. 1968년 명동의 한성화교학교가 연희동으로 이사 오면서 화교 타운이 형성됐다. "정통 중국요리 먹기 위해 구태여 인천까지 갈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쯤 되면 일식집 복강의 누룽지탕 역시 "대륙에의 투항"쯤으로 해석되기 쉽지만, 복강의 안주인인 유문숙씨는 "막역한 우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중국집 진보(眞寶·사장 정영안)와의 인연 때문이라는 것. "남편과 진보 사장님이 절친(切親)"이라며 "진보의 누룽지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상호(商號) 역시 진보와의 인연이 깊다. 복강의 일본어 발음은 후쿠오카(福岡). 진보 정 사장이 청년 시절 유학을 가서 지금의 부인을 처음 만난 곳이라고 했다. 구수하고 걸쭉한 중국집 누룽지탕에 비해 복강의 누룽지탕은 훨씬 칼칼하고 매콤하다. 메인 요리가 아닌 탓에 풍성한 양은 아니지만, 오징어, 홍합, 새우가 바삭바삭한 누룽지와 사이좋게 어울린다. 직접 한 밥을 널찍한 구이판에 구워낸 복강 홈메이드 누룽지다. 소위 '스키다시'(곁들인 안주)로 배불리는 일부 저렴한 일식집과 달리, 복강은 활어모둠회를 먼저 내는 정석을 따른다. 그날그날 노량진에서 물 좋은 놈들을 가져오는데, 이날은 농어, 연어, 광어, 점성어가 식탁의 주인공이 됐다. 또 새우·광어 초밥과 함께 나오는 김밥을 꼭 즐겨보시기를. 맛살과 햄, 계란말이 등 안에 박아 넣은 소가 하도 튼실해, 거의 김 바깥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살 발라낸 생선으로 끓인 서더리탕과 김치알밥도 일품이다. 복강의 점심 정식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1인 2만원. 주말에 가격을 올리는 대부분의 식당과 다른 미덕이니, 주말 가족들의 외식 코스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저녁에는 1인 4만원부터. 작은 방이 네 개 있는데, 각각 춘하추동으로 불린다. 테이블은 10개 정도. 크지 않은 집이니만큼 예약은 필수다.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를 해준다. 명절에만 쉰다. 차이나타운의 후쿠오카, 복강이다. (02)324-1402
맛 ★★★☆ 분위기 ★★★☆
서비스 ★★★ 만족도 ★★★★
(별 다섯 개 만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