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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맛보는 신선함 돋보이는 '한우 육사시미'

글쓴이: 햇살  |  날짜: 2013-08-23 조회: 5780
http://cook.pruna.com/view.php?category=U0wNNEIrVD9NNA%3D%3D&num=EhBGdBU%3D&page=91   복사

남도답사 일 번지 강진의 한우 암소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매체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문화재는 박물관에서나 만나는 것이고, 역사는 연대를 달달 외우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오면서부터 사람들의 생각과 안목이 확 바뀌었다. 문화재는 박제된 유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란 현재와 단절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집 밖을 나서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교감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저 구경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여행의 전부로만 알았던 사람들 사이에 답사라는 형태의 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다. 책은 온 나라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교양인으로 만들었다.


서울에서 맛보는 신선함 돋보이는

↑ [조선닷컴]한우 육사시미


서울에서 맛보는 신선함 돋보이는

↑ [조선닷컴]한우 육사시미 만드는 과정


서울에서 맛보는 신선함 돋보이는

↑ [조선닷컴]한우 육사시미 한상차림


서울에서 맛보는 신선함 돋보이는

↑ [조선닷컴]매생이탕

책이 발간되기 직전 우연찮게 강진과 다산초당을 다녀왔던 필자는 저자가 왜 강진을 남도답사 일번지로 꼽았는지 알 듯했다. 강진은 때 묻지 않고 신선했다. 사람도 자연 환경도 문화유산도 외부의 손을 타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친구가 나중에 보니 속 깊고 정 많은 녀석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 감동을 강진에서는 충분히 받게 된다. <청자골>은 강진에서 올라온 부부가 강진에서 보내온 한우 암소를 파는 고깃집이다. 서울에 올라와 12년 째 고깃집을 하며 자릴 잡았지만 부부의 얼굴엔 여전히 '강진 사람'이라고 써있다.

바닷바람 맞은 볏짚, 그 볏짚 먹고 자란 한우 육사시미


<청자골>의 특성을 제일 많이 간직한 메뉴는 역시 육사시미(150g 2만원, 300g 3만 5000원)다. 주인장의 처남이 고향인 강진에서 한우 사육과 축산유통업을 하고 있다. 이 집 육사시미는 처남이 오전에 도축해 강진에서 고속버스 화물 편으로 직송한 한우 암소 우둔 부위다. 빠르면 오후 서너 시경에 도착한다. 도축장이 문을 닫는 일요일과 휴일을 제외하곤 매일 보내온다. 하루 공급량이 일정해서 예고 없이 방문해 많은 양을 주문하면 낭패보기 쉽다. 이럴 경우에는 미리 예약을 해두어야 강진에서 물량을 더 확보할 수 있다.

강진은 정다운 바다 강진만을 낀 한반도 서남쪽의 청정 고장이다. 강진만의 갈대밭과 여린 갈잎을 살살 흔드는 순하디 순한 바닷바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강진의 맛을 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한우를 기르지만 강진의 한우는 조금 다르다. 강진의 흙은 청자의 원료다. 물을 붓고 이겨 구워내면 비취 빛 청자로 변하는 땅이다. 강진산 한우는 바닷바람 맞은 볏짚을 먹고 자란다. 남해 푸른 바다의 기운과 미네랄이 볏짚을 거쳐 한우 육질에 자연스레 스몄을 것이다.

땅 기운과 바닷바람 맛이 한우 등급분류 기준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단골 고객들은 잘도 알아챈다. 먹을수록 고소하고 차진 맛이 다르다고 한다. 육사시미는 본래 도축 후 경과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실온에 두어도 핏물이 생기지 않고 육질이 차지다. 접시에 붙여놓고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집 육사시미는 거기에다 청자의 흙 맛과 바닷바람 맛이 추가로 가미되었다.

함께 내오는 찬류에서도 강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김치, 우무무침, 홍어무침, 무장아찌, 백김치가 된장찌개와 함께 나온다. 특히 우무무침의 재료인 우뭇가사리는 강진산을 쓴다. 옛날 강진에서는 우뭇가사리로 묵을 만들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과객의 식량으로도 썼다고 한다.

채소 무침과 함께 먹어도 좋지만 육사시미는 역시 묵은지에 싸먹는 맛이 좋다. 마늘과 참기름을 넣은 양념장에 찍어 묵은지에 싸서 먹으면 고소한 풍미가 더 진하다. 처음에 입에 넣으면 인절미처럼 쫀득쫀득하다가 몇 번 씹으면 흐물흐물 곤죽처럼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입 안에서 녹는다'고 한다.

청자 접시에 담은 육사시미, 육장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육사시미 맛을 더 내주는 이 집 육장은 사과, 마늘, 고추장, 참기름, 청주 등을 섞어 적당히 숙성시킨 뒤 쓴다. 이 육장을 개발하는 데만 꼬박 한 해가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깔끔한 육사시미 고유의 풍미를 즐기려면 소금에만 찍어먹는 것이 좋다. 원하는 손님에게는 소금을 내어준다.

여기에 곁들이는 소주도 호남지방에 본사를 둔 소주 브랜드 제품을 내놓는다. 장소만 서울 강남이지 완전히 술과 음식, 그리고 사람과 인심이 모두 남도풍이다. 가만 보니 육사시미를 담은 접시가 청자다. 역시 강진의 다산요에서 구운 청자 접시였다. 고려시대 왕실과 귀족들이 썼다던 바로 강진의 청자였다.

육사시미는 손님들만 찾는 게 아니다. 주인장 김대현(49) 씨와 송재연 씨는 1남 3녀를 둔 다복한 부부다. 김씨의 자녀 4남매 모두 한 번에 1근씩은 거뜬히 먹어 치우는 육사시미 마니아라고 한다. 부부의 순박한 얼굴에는 아이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의지가 묻어있다. 청자를 빚어냈던 도공의 마음이 얼핏 스친다. 육사시미를 대할 때마다 용어 표기가 늘 마음에 걸린다. 육사시미는 육회로, 기존 육회는 양념육회로 순화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육사시미와 함께 매생이탕(1만원)도 남도 냄새가 물씬 나는 메뉴다. 매생이탕은 식사메뉴이자 해장에 최고 가는 음식이다. 이 집에서는 완도에서 수확한 첫 소출 분 매생이를 확보해 진공 급랭으로 저장해두고 1년 내내 사용한다. 겨울에는 굴을 넣고 끓이지만 요즘 같은 하절기에는 굴 대신 홍합, 갑오징어, 바지락 등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물을 적게 붓고 끓여 진국이다. 찬으로 내오는 갓김치와 파김치에서도 매콤한 강진의 들녘 내음이 난다.
<청자골>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01-71 전화: 02-935-0609

기고= 글 이정훈, 사진 임성일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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