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 몸에 안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하지만 한 번도 설탕을 끊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의미심장한 내용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설탕 중독, 그리고 설탕 끊기 캠페인. 과연 설탕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굳이 설탕을 끊어야 할까?
◆ 먹을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설탕, 그리고 불편한 진실
환경정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당 1년 설탕 섭취량은 약 26kg. 김장 때나 쓸 법한 널찍한 대야에 딱 그만큼의 각설탕을 담아보니 아슬아슬하게 하얀 산이 쌓인다. 대략적으로 생각해도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몸무게 정도. 한국영양학회가 정한 한국인의 설탕류 1일 영양 권장량이 50g(연간 18.25kg)을 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양의 설탕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절대적 수치도 수치지만, 지난 20년 사이에 설탕 섭취율이 20%나 늘어났고,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데 도통 실감이 나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잘못 먹고 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토마토케첩의 25%가 설탕이고, 일반 청량음료의 12~13%, 시리얼은 100g당 당분 함량이 40g 정도, 그러니까 40%가 설탕이라는 소리다. 또 콜라 500ml에도 66g의 설탕이 녹아 있고, 아이스크림 100g중 33g이 역시 설탕이다. 어디 그뿐인가, 저칼로리 탄산음료조차도 설탕 대신 설탕보다 단맛이 2백 배 강한 아스파탐이라는 합성감미료가 숨어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공식품을 통해 무절제하게 설탕을 섭취하고 있었다.
Tip
사카린:설탕보다 단맛이 3백 배 강하지만 열량이 없어 널리 쓰이는 인공감미료. 발암물질로 의심을 받아왔지만 2010년 말, 해로운 물질이라는 의심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났다.
아스파탐: 설탕의 2백 배에 달하는 단맛을 내는 인공감미료. 칼로리, 혈당 걱정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제품에 사용되며 뇌와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흥분독소로 불린다.
시클라메이트: 설탕보다 30배 더 달다. 1970년대 쥐 실험 결과 발암물질로 판명되어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아세설팜: 사카린과 구조가 비슷하며 단맛은 설탕의 2백 배 정도이다.
액상과당: 설탕보다 싸고 단맛이 진한 옥수수시럽.
혹시 나도 설탕 중독?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렇게 단호하게 딱 잘라 끊을 필요까지 있을까? 설탕도 소금처럼 우리 몸에 어떤 쓸모가 있지 않을까?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정제한 뒤 가공한 탄수화물 식품으로 백설탕의 경우 다른 영양소는 전혀 들어 있지 않고 수분 0.5%를 제외한 99.5%가 당질이다. 하지만 우리 몸이 원하는 당분, 즉 탄수화물은 규칙적이고 올바른 식사만으로도 이미 75% 이상을 섭취하게 된다. 나머지는 과일 등으로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 그러니 설탕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공중보건국 연구에 따르면 단맛이 강한 음식을 먹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약물 중독자가 마약을 복용하거나 흡연자가 담배를 피울 때 나타나는 뇌 현상이 동일하다고 한다. 당분을 섭취하면 세로토닌이라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당분을 과다 섭취하면 세로토닌이 과다 분비되고 이에 맞춰 좋은 기분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당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울증에 걸릴 수 있고, 더 심해진다. 치아가 썩고, 살이 찌는 정도는 가벼운 부작용이다.
그 외에도 설탕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만병의 근원인 저혈당을 만들며 두통과 초조, 신경질과 짜증 지수를 올리는가 하면 집중력 저하와 갑상선 기능 저하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 7개월째 고군분투 고은미씨의 설탕 끊기
지난해 환경정의에서 처음으로 설탕 끊기 캠페인을 기획했다. 당시 그곳에서 근무한다는 연유로 자의 반 타의 반 설탕을 끊기로 결심했다는 고은미씨. 처음 목표는 한 달. 먼저 스스로의 식습관을 관찰해볼 겸 일주일간 음식량을 기록해보고, 건강검진을 통해 현재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검사 결과, 어릴 적부터 비만이긴 했지만 보통 또래 여성들의 식습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에너지 섭취 평가를 보니, 평균 여성에 비해 1.7배 정도 음식을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디어 D-day 설탕 끊기 시작. 첫날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설탕이 배제된 식품을 찾다 보니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가공식품 중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살림이나 생협 등 건강한 먹을거리를 파는 곳에서 간간이 찾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설탕류가 아예 들어가지 않은 상품은 많지 않았다. 만약 엄마의 정성스러운 밥상에 의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너무 괴로웠을 것이다. 아침, 저녁은 물론 점심도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김치에도, 고추장에도 설탕을 전혀 가미하지 않았고, 현미잡곡밥이 쌀밥을 대신했다. 특히 설탕을 끊을 때는 현미잡곡밥을 먹는 것이 좋은데, 미각을 교정하고 혈당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혈당이 안정화되어 있으면 단것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다고.
설탕에 대한 두려움, 금단현상
설탕을 끊은 지 3일, 출근할 때부터 몸이 조금 이상했다. 열이 오르더니 몸이 가렵고 가벼운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증상은 저녁이 되면서 머리가 무겁고 약간 띵한 상태로 변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4일째부터 본격적인 금단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고 무겁고 미열이 나면서 마치 기면증에 걸린 사람처럼 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손까지 떨렸다. 금단현상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나, 평소 단것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가볍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도가 셌다. 8일쯤 되는 날에는 머리가 아픈 증세도 거의 없고 울렁거림도 약해져 이제 사라지나 싶었는데, 그 이튿날 더 강력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금단현상을 겪으며 그녀는 설탕 중독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가 설탕을 멀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저 맛있어서 먹은 설탕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중독성을 체험하고 나니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선 안 되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2주 후 금단현상이 사라지고 몸이 개운해졌다.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불치병이라 생각하고 방치해두었던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간혹 우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회복 주기가 빨라진 것을 느낀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나
설탕을 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가 좁아졌지만, 실제 그녀가 먹는 양은 줄지 않았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그녀는 1달에 1kg 정도씩 몸무게가 빠지더니 지금까지 총 6~7kg이 감량되었다. 오로지 설탕만 안 먹고 한 다이어트다.
되도록 외식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불가피할 때는 콩국수에 소금만 약간 넣어 먹거나, 아니면 굴국밥, 칼국수, 된장찌개, 청국장 등을 먹었다. 당근이나 양파, 견과류 등을 간식으로 즐겨 먹고 미숫가루나 100% 과즙을 사두고 먹었다. 라면이 먹고 싶을 땐 통밀국수를 삶아 김칫국물에 말아 먹었고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땐 무설탕 고추장을 넣거나 간장떡볶이를 해 먹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과일의 단맛조차도 너무 달게 느껴질 정도로 미각이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