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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술

글쓴이: 장미  |  날짜: 2013-12-20 조회: 2820
http://cook.pruna.com/view.php?category=TUAYJQ%3D%3D&num=FRpPeBY%3D&page=54   복사

계절이 바뀌자 빛도 바뀌었다. 아마도 그건 정서의 변화일 테지만. 온기에도 빛이 있다고 느껴지는 계절이 있다. 그때 빛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 속에 술을 들고 갔다.


1. Voga
시각적인 상큼함으론 보가를 따라올 술이 많지 않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있을 때 보가 보틀은 발광체 같다. 그런데 눈부시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적당한 빛, 적당한 취기, 적당한 달콤함이 보가다. 용량이 큰 보가가 있고 작은 보가가 있는데 작은 보가는 아이 같다.

+ 보가 스파클링 와인 200ml 가격은 1만7천원. 이탈리아 트렌티노 지역에서 수확한 피노 그리지오와 샤르도네를 블렌딩했다.



빛은 술


빛은 술


2. Indica
인디카는 양조장에서 소량으로 만든 에일 맥주다. 라거는 장시간 저온에서 발효시키고 에일은 상온에서 짧은 시간 발효시킨다. 당연히 에일 맥주의 맛이 '살아 있네'다. 라거는 더울 때 벌컥벌컥 마시지만 에일은 혀로 맛을 읽으며 마신다.

+ 인디카 가격은 1만2천원. 캘리포니아의 로스트코스트 양조장에서 만들었다. 탄산은 적고 맛은 깊다. 6~10℃ 정도의 온도로 마신다.

3. Hitachino Nest
병따개로 뚜껑을 따면 뚜껑이 날아간다. 히타치노 네스트의 뚜껑은 정말 날아간다. 부엉이라서. 하지만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진 뚜껑을 굳이 집어 들어 보고 싶다. 부엉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데 왠지 마주 보아야 할 것 같다. 히타치노 네스트는 종류가 여러 개인데 모두 에일 맥주다.

+ 진저 에일, 화이트 에일, 엑스트라하이, 니포니아 각각 9천5백원, 7천5백원,9천5백원, 3만2천원. 일본의 사케 장인 기우치 주조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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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Vine Star
바인 스타는 라벨의 꽃 그림이 인상적이다. 수십 년에 한 번, 잠시 핀다는 대나무 꽃이다. 그래서일까? 꽃 그림에 취해 판단력을 상실한 걸까? 마시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아로마다. 향이 맛을 이기는 와인. 꽃 향이 바람처럼 훅 지나간다. 낮에 꽃밭에서 마시면 정신을 못 차린다… 경험담 맞음.

+ 바인 스타 가격은 8만원. 레드 와인.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서 생산한 진판델 품종에 시라, 프티 시라 등을 블렌딩했다.

5. 간바레 오또상
간바레는 '힘내세요'란 뜻이고 오또상은 '아빠'다. 합치면 아빠 힘내세요가 된다. 간바레 오또상은 사케다. 팩에 들었다. 유리병에 사케를 넣는 것보다 팩에 사케를 넣는 게 저렴하다. 유통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 들고 다녀도 깨지지 않으니까. 대한민국이 IMF에 허덕이던 시절에 일본도 경제가 바닥을 쳤다. '아빠 힘내세요'는 당시 아빠들을 위해 만들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다른 사케에 비해 싸다.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마시자.

+ 간바레 오또상 가격은 3만5천원. 일본 나카타 지방의 쌀로 만들었다. 혀끝을 마비시킬 정도로 차갑게 마셔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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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Bob's Your Uncle
오후 7시, 간판의 불이 켜질 무렵, 그러나 그것이 아직 빛나기 전, 맥주는 가볍고 와인은 무겁다고 느낄 때 떠오를 만하다. 밥스 유어 엉클, 일명 '밥스 와인'은 한국에서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모양이 귀여워서. 그리고 맥주 같지만 맥주가 아니어서. 약간 맵고 끝 맛은 부드럽다. 육류와 어울린다고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커피나 맥주 대신 마시는 게 어떨지? 뭐, 취향의 문제지만.

+ 밥스 유어 엉클 레드 가격은 1만5천원. 남아프리카 와인이다. 피노타지, 프티 베르도, 멜롯뿐만 아니라 카베르네 소비뇽까지 블렌딩했다. 조잡하게 느껴지지만 포도의 품격을 해체하며 마실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분위기니까.

7. Lupe
루페는 최고다.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면 와인을 마실 때마다 눈이 감기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데, 과장이다. 만화니까. 그런데 루페를 마시면 정말 구름과 하늘이 떠오른다. 밤에 책상에서 무엇이든 할 때, 오직 한 잔의 취기만이 필요할 때, 아무것도 없이 간편해지고 싶을 때 루페를 뜯는다. 친환경 플라스틱 잔에 든 하늘이 쏟아진다. 맛과 향 때문이 아니라 단출해진 마음 때문에. 지금 마시고 있다.

+ 루페 가격은 7천5백원. 당당하게 프랑스 와인이다. 비슷한 콘셉트의 글라스 와인으로 샤토 도맹 카뱅듀가 있다. 호주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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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ka Miso Lager
한라산 소주처럼 일본에도 지역의 특성을 살린 술이 있다. 엄청 많다. 킨사치 아카 미소는 라거 맥주다. 고향은 나고야. 맛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색다르다. 정말 좋은데 뭐라 할 말이 없네. 그래서 원재료를 뒤져보니 백설탕이 12%나 들어갔다. 맥주에 설탕이라니! 더 황당한 건 된장이 1.2%나 함유됐다는 것. 그 맛이 된장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 아카 미소 라거 가격은 2만원. 일본 나고야의 킨사치 양조장에서 만들었다. 된장 때문일까, 색이 흑맥주 같다.

9. Cuerpo Mojito
모히토는 왜 인기가 있을까? 민트 잎 때문에 채식하는 느낌이 드나? 맛이랑 향이 경쾌하고 산뜻해서 살도 안 찔 것 같아서? 음… 모히토를 마시기에 좋은 곳은 어두운 바가 아니라 구름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하늘 아래다. 하지만 그곳엔 럼도 없고 라임도 없다. 쿠엘포 모히토는 있다. 새싹이라도 띄워 마셔보자.

+ 쿠엘포 모히토 가격은 3만원대. 캐리비안 럼을 베이스로 만들었다. 차가운 상태에서 샷으로 마실 때 가장 좋다. 사이다, 토닉 워터를 섞어 마실 수도 있다. 비율은 느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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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tella Artois, Löwenbrau
스텔라 아르투아는 벨기에 맥주고 레벤브로이는 독일 맥주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파인애플 향이 나고, 레벤브로이는 황금색이다. 스텔라 아르투아라고 발음할 때는 우아해지고 레벤브로이라고 발음할 때는 단호해진다. 둘 다 6백 년이나 됐다. 6백 년이나 그래 왔던 게 여전히 그렇다. 역설적으로 비현실 같다.

+ 스텔라 아르투아, 레벤브로이 각각 3천원, 2천7백원. 스텔라 아르투아는 체코산 사즈 아로마 홉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레벤브로이는 바이에른 지방의 홉을 사용한다. 둘 다 '한국 맥주는 왜 싱겁나요' 논란의 주역이다.

11. Jameson
제임슨은 영화배우 이름 같다. 아마 아일랜드 태생의 잘생긴 청년 배우일 거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 제임슨은 영국의 영화 잡지 <엠파이어>가 주최하는 '제임슨 엠파이어 어워드'의 파트너다. 2008년부터는 더블린 국제영화제의 스폰서도 맡고 있다. 분명 이름 때문일 거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제임슨을 마셨더니, 좋다. 조용해서. 이건 맛에 관한 수사다. 말수가 적고 관대한 맛이다.

+ 제임슨 가격은 4만5천원. 아일랜드 위스키다. 위스키답지 않게 유연해서 탄산음료나 과일 주스와 섞어 마실 수도 있다. 찬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 마실 때가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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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Somersby
써머스비는 라벨에서도 느껴지듯 푸릇푸릇하다. 빛 좋은 오후에 공원의 잔디를 파보면 몇 병씩 자라고 있을 것 같다. 도수는 4.5도. 와인이나 샴페인 대용으로 좋다. 아, 써머스비는 사과를 발효해서 만들었다. 사이다라는 단어는 '사이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런 술을 포함한다. 그래서 써머스비는 사이다다.

+ 써머스비 사이다 가격은 3천원. 맥주 그룹 칼스버그사가 2008년에 출시한 저알코올 음료. 보통 이런 저알코올 음료는 가볍게 홀짝홀짝 마시다가 어느 순간 취하는데, 신기하게 이건 안 취한다.

13. Coedo Ruri
기업에서 만든 맥주뿐만 아니라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까지 수입되는 현상은 긍정적인 거겠지? 코에도 루리는 일본 사이타마현 남부의 가와고에가 고향이다. 맛은 강렬하지 않다. 평범한 라거 맥주라고 하면 양조장에서 기분 나빠하려나. 탄산이 강해 정제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데 그건 장점 같다. '웰메이드'는 공장에서 만든 맥주로 충분히 경험했으니까.

+ 코에두 루리 가격은 5천원. '코에도 브루어리' 양조장에서 만들었다. 이 양조장은 고구마를 넣어 만든 코에도 베니아카 맥주로 유명해졌다. 독특한 맥주를 많이 만드는데 그중에서 루리는 기본에만 충실한 맥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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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Hendrick's Gin
'진을 마신다'는 문장은 멋있다. '진'은 단 한 글자지만여러 장면을 함축하고 있다. 헨드릭스 진은 소위 말하는 '프리미엄' 진이다. 헨드릭스 진을 설명할 때 보통 두 단어를 꺼낸다. 장미, 오이. 느낌표가 필요하지 않나? 장미 향과 오이 맛이라니! 그런데 표면적인 평가다. 헨드릭스 진은 빛이 겹겹이 쌓여 탄생한 물질 같다. 오묘하고 복합적이다.

+ 헨드릭스 진 가격은 5만7천원. 11가지 천연 허브 원료와 불가리아산 장미 꽃잎, 네덜란드산 오이에서 추출한 내추럴 오일로 만든다. 토닉 워터를 섞어 커피를 마시듯 느긋하게 삼킨다.

15. Sailor Jerry
세일러 제리의 라벨은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킨다. '럼은 남자의 술이다'라는 것. 미치고 싶은 남자는 럼을 마셨다. <캐리비안 해적>의 잭 스패로우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술병에도 럼이 들어 있었다. 세일러 제리를 마시면 라벨의 여자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게 되거나, 그런 여자와 섹스를 하고 싶어진다. 라벨의 그림은 전설적인 타투이스트 세일러 제리가 그렸다. 왜 세일러 제리 럼인지 알겠지?

+ 세일러 제리 럼 가격은 3만1천9백원. 일반적으로 럼은 거친 술이어서 콜라, 맥주, 라임 주스와 섞어 마신다. 세일러 제리 럼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과 함께 언더록으로 마셔도 좋다. 에너지 드링크를 타서 샷으로 마셔도 괜찮고.



* Editor 이우성 | photography 안정환 | ASSISTANT 이석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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