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막걸리 '이화주' 직접 빚어보니
'황금빛이 도는 술, 잣으로만 빚은 술/댓잎으로 담근 술, 배꽃 무렵 빚은 술/앵무잔, 호박배에 가득 부어/거나하게 취한 광경, 그 모습이 어떠하리.'
800년 전 고려시대 사람들은 권커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며 흥에 겨운 음률을 남겼다. 한림별곡(翰林別曲·1215~1216) 제4장에 등장하는 '배꽃이 필 무렵 빚은 술'이 최고급 막걸리인 이화주(梨花酒).
'이게 술인가, 요구르트인가'. 처음 이화주를 보는 이들의 반응이다. 워낙 걸쭉한 탓이다. 상앗빛 요구르트 같은 이화주는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정도다.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알려진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1670년경)에는 '물을 타 먹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화주는 2년 전 복원됐다. 밀 누룩을 사용하는 일반 막걸리와 달리 쌀 누룩을 이용한다. 백설기로 빚어 깨끗한 흰 빛에 쌀 누룩 특유의 구수한 풍미를 자랑한다. 코끝에서는 언뜻 사과향도 감돈다. 단맛과 신맛이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일반 막걸리(6~7도)에 비해 13~14도 정도로 제법 도수가 높다.
가격표를 보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700mL 1병에 8만원으로, 일반 막걸리보다 60배 정도 비싸다. 이화주를 복원한 국순당 조인영 주임연구원은 "일일이 손으로 빚어 극소량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는 곳도 한정(현대백화점 압구정점)돼 있다. 지난해 추석 때 출시된 1000세트는 1주일 만에 매진됐다.
하지만 이화주를 빚는 과정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 재료도 간단하다. 백설기, 쌀, 물만 있으면 된다. 기자는 지난 1일 경기도 국순당 전통주연구소에서 이화주 만들기에 도전했다. 한자리에서 모든 과정을 체험해봐야 하는 기자를 위해 조 연구원이 각 단계를 미리 준비했다. 재료를 일단 보자. 백설기와 쌀은 각 1.5㎏, 물은 1.5L 필요하다. 이 재료면 이화주 3.5L 정도가 나온다. 백설기는 반드시 소금과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을 쓴다.
먼저, 술을 발효시킬 누룩을 만들어봤다. 쌀을 깨끗이 씻어 충분히 불린다. 요즘 기온으로 2시간 정도가 적당하다. 불린 후 3시간이나 물을 뺀다. 조 연구원은 "수분이 많으면 누룩으로 만든 후에 썩기 쉽기 때문에 반드시 깨끗하게 빼야 한다"고 했다. 누룩이 썩으면 초록빛이나 붉은빛이 도는 '나쁜' 곰팡이가 핀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연한 노란빛이 되는 '착한' 곰팡이다.
물을 뺀 쌀을 믹서로 갈았다. 쌀가루를 성인 남자 주먹 크기로 동그랗게 뭉쳤다. 누룩공의 크기도 중요하다. 너무 크면 곰팡이가 피기 전에 상하기 쉽고, 너무 작으면 수분이 부족해 말라버린다. 적당한 크기는 오리알 정도다. 준비한 재료로 6~7개 누룩공이 나왔다.
누룩공을 만들었으면 큰 고개 하나를 넘은 셈이다. 바닥에 솔잎을 뿌린 용기에 공을 담아 1주일 정도 둔다. 솔잎은 600g에 6000원 정도로, 경동시장에서 판다. 3일 정도가 지나면 미색 곰팡이가 솜털처럼 돋는다(25도 기준). 7일째까지 그대로 둔다.
곰팡이가 잘 핀 누룩공은 12등분 정도로 잘라내 햇볕에서 하루 정도 말려야 한다. 왜 이 과정이 필요할까? 발효에 필요한 미생물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잡균을 살균할 수 있고, 장기간 보관도 가능해진다.
말린 누룩을 다시 믹서로 간다. 가루 형태가 물에 풀기 쉽기 때문. 누룩 가루를 물과 섞어 용기에 담았다. 백설기도 조각 내 함께 버무려 넣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간뿐. 10~14일이면 발효가 돼 용기 안이 찰랑거린다. 1주일 정도면 윗부분에 기포가 생기면서 술이 끓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시큼한 요구르트 냄새가 난다. 3주 후면 최고급 막걸리 완성. 냉장 보관하면 3개월간 두고두고 마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