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독감이 유행이다. 겨울 가뭄으로 실내가 건조한 데다 강추위가 1주일 이상 한반도를 뒤덮은 탓이다. 게다가 운동부족으로 신체 면역력(저항력)은 크게 저하된 상태다. 경기 침체라는 스트레스도 한 요인이다.
감기나 독감에 걸리면 뾰족한 약이 없다. 이들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약은 아직 없다. 대증요법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랜 세월 인류와 함게 한 감기·독감이다 보니 나라마다 다양한 민간요법이 존재한다. 개중엔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것도 꽤 있다.
◆가새풀=유럽에선 감기 기운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항생제나 타이레놀 대신 흔히 가새풀(echinacea)을 추천한다.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정하 교수는 “가새풀은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신체 면역력을 높여 감기 치유를 돕는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별명이 ‘자연 항생제’다.
가새풀의 감기 치유 효과는 비타민 C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8주 이상 복용하면 간 손상·피부 발진·설사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당뇨병·동맥경화·다발성 경화증·류머티즘성 관절염·알레르기 환자에겐 금물이다.
◆유칼립투스=호주에선 감기 치유에 유칼립투스라는 허브를 이용한다.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의 잎에선 톡 쏘는 듯한 향기가 난다. 이 잎에서 채취한 오일은 감기 환자를 위한 향기요법(아로마테라피)의 원료로 쓰인다. 또 유칼립투스의 잎을 뜨거운 수건으로 감싼 뒤 감기 환자의 윗쪽 가슴을 마사지하기도 한다. 그러면 숨쉬기가 편안해진다.
이런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에선 기침이 심할 때 꿀을 가슴에 바르고 양배추 잎으로 몸을 감싼다. 보드카나 알코올을 가슴에 바르기도 한다.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서다.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전세일 원장은 “유칼립투스는 페퍼민트와 함께 감기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허브”라며 “손수건에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코에 대고 들이마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술=감기 치유를 위해 술을 마시는 민족도 있다. 프랑스인은 감기를 와인(포도주)으로 다스린다. 레드와인에 계피·오렌지 등을 넣어서 끓인 뱅쇼(vin chaud)를 마신다.
포르투갈에선 뜨거운 우유에 브랜디를 넣어 마신다. 레몬즙·계피를 첨가한다는 점에서 뱅쇼와 닮았다. 일본인은 달걀술을 마신다. 뜨겁게 데운 청주에 날달걀을 푼 술이다. 스코틀랜드인은 위스키에 뜨거운 물·꿀·레몬 한 조각을 넣어 마신다. 술이 감기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한방에선 술은 감기의 적으로 본다.
술 대신 뜨거운 물이 효과적일 수 있다. 뜨거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물은 비강·인후 등에 머물러 있던 감기·독감 바이러스를 위장으로 내려 보낸다. 감기 환자에게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장하는 것은 이래서다.
◆당분=“감기 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는 것도 세계 공통이다. 감기·독감에 걸리면 평소보다 열량이 많이 소모되는데 입맛은 떨어진다. 끼니를 거르면 바이러스에 대항할 힘을 잃는다. 따라서 감기 환자는 먹으면 바로 에너지원으로 전환되는 당분을 충분히 섭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감기로 인해 열이 나면 당분·비타민 B1·C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유익하다. 감기에 걸리면 스웨덴인은 산딸기·블루베리, 러시아인은 딸기를 많이 섭취하는 것은 이래서다. 에티오피아에선 벌꿀을 넣은 레몬즙을, 홍콩에선 흑설탕을 넣은 차를 끓여 마셔 당분을 보충한다.
◆땀내기=우리 조상은 감기 기운이 있으면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셨다.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땀을 냈다.
한방에선 이를 한법(汗法)이라 한다. 땀을 내면 몸속 나쁜 기운이 땀으로 빠져나가 감기가 치유된다는 것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한방내과 고창남 교수는 “감기환자가 소주를 마시거나 사우나에 가서 땀을 내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땀구멍이 열려 한기가 더 심하게 든다”고 조언했다.
감기 환자에게 추천할 만한 우리 전통 음식은 배숙이다. 배숙은 배의 속을 긁어낸 뒤 꿀·대추·도라지·은행 등을 넣고 중탕한 것이다. 맛이 달인 꿀물 맛과 비슷해 어린이도 좋아한다. 기관지염·천식·기침에 효과가 있다.